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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당일 설악산, '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희운각' 후기

by 오르고오르다 2023.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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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씩은 설악에 가는 게 나와의 약속 같은 건데, 보통은 여름에 설악을 갔었지만 올해는 어찌하다 보니 10월에 찾게 되었다. 

대학 때부터 하계, 동계 훈련으로 찾았던 설악산, 그때와는 산행 분위기나 또 나의 체력 등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설악은 참 멋있었다. 크고 거칠고 또 아름다운 설악이다. 

10월에는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에 급한 일들을 빨리 해치우고 급하게 계획을 짰다. 하계였다면 백담사 쪽으로 해서 대청을 찍고 오는 코스를 짰겠지만, 10월엔 백담사 버스가 7시부터 운행하기 때문에 보다 빨리 접근할 수 있는 설악동에서 주차를 해놓고 '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희웅각' 코스를 선택했다. 

새벽 2시에 서울에서 출발하니 4시 30분 즈음 설악동에 도착했다. 설악동 근처의 김밥집에서 4천 원을 주고 김밥 한 줄을 사고 주차를 했다. 주차비는 1만 원이 소요됐다. 신흥사 입장료는 없어졌지만, 주차비가 있다... 무튼 출발 시간은 04:50분

설악동에서 비선대로 가는길

앞에 출발한 분들이 꽤 있는지 렌턴 불빛이 앞에 반딧불 마냥 춤을 춘다. 달이 밝았지만 렌턴이 없으면 이정표를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으니, 렌턴은 꼭 챙기자. 산에선 어떤일이 있을지 모르니 렌턴, 라이터, 경량 파일 재킷, 윈드레인 재킷은 무조건 챙겨서 산행을 하자.  

점점 날이 밝아오는 것 같았다. 늦장 부린 내가 잘못이지만, 좀더 힘을 내서 일출을 능선에선 보기 위해 다리를 바삐 움직였다. 나보다 앞에 출발했지만, 가파른 오르막 길에 벌써부터 지친 분들이 길 중간중간 쉬고 있는 걸 보자니 '짐을 조금 줄이세요. 장비만 좋은 거 쓰시면 뭐 합니까. 술이랑 과일, 편육 등은 안 먹어도 되잖아요.'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참을 헥헥 거리며 올라왔더니 슬슬 여명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름이 많이 낀 날이라 그런지 여명이 더욱 멋있었다. 이 시간이 05:47분.

하늘을 녹일 듯이 새빨간 태양이 떠오른다. 어두웠던 설악의 숲이 이제 하나 둘씩 깨어나는 것 같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하품도 나고 몸이 덜 풀렸는데 일출과 함께 내 몸도 조금씩 페이스가 오르는 것 같았다.

아직 단풍이 덜익은 날이었지만, 일출의 빨간빛으로 인해 숲이 예쁘게 물들었다. 산행을 즐기는 방법은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자연이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 때문에 산행이 참 좋은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에 감동한달까.

능선에 가까울 수록 하늘이 점점 밝아온다. 연신 감탄을 하며 오른다. 대학교 때 설악에 오를 땐 그저 훈련이고 기록에만 집중했었는데 이렇게 자연이 주는 멋진 모습을 알게 되어 너무 좋다. 

저 멀리 속초 시내가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속초이겠지?  이제 능선에 붙었으니 조금씩 속도가 날것 같다. 새로 구입한 스틱 때문인지 오르막길에 꽤 힘이 되었다. 느낌적인 느낌일 수 있지만, 다리에 뻠삥이 덜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정말 그림 같은 설악의 풍경.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록키도 가보고 일본의 북알프스도 가봤지만, 설악산은 설악산만의 멋짐이 있다. 풍경을 좌우, 앞뒤로 감상하면서 한참을 걷다 보니 목도 마르고 허기가 진다. 원래 산행에서 물도 잘 안 먹고 밥도 잘 안 먹지만 적당한 곳을 찾아 쉬면서 밥을 먹기로 했다. 이 시간은 08:50분이었다. 네 시간을 운행했으니 먹을 때가 되긴 했다. 

김밥의 맛은... 짰다. 다음부턴 미리 준비해서 가야겠다. 그래도 준비해 간 따뜻한 차와 함께 먹으니 배도 적당히 채우고, 몸에 온기도 더할 수 있었다. 또 추석에 어머니가 챙겨주신 샤인머스켓도 입가심으로 먹으니 뭔가 소풍 온 듯한 느낌이었다. 

산에 버려진 쓰레기

산에는 쓰레기가 참 구석구석 잘 버려져 있다. 자기도 모르게 떨어트린 것일 수도 있지만 다분히 의도적으로 버린 것 같은 쓰레기도 참 많다. 물티슈부터 생수병, 과자 봉지 등... 이런 쓰레기를 보고 있으면 지나치기가 어렵다. 손에 닿는 곳에 있으면 꼭 주워오려고 하는데 줍다 보면 산행 시간도 늘게 되고 늙어서인지 허리도 조금 아프다.

 이렇게 주워온 쓰레기가 두 봉지나 된다. 봉지가 꽉 차서 더 줍고 싶어도 못 주었지만... 이렇게 쓰레기를 주워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는데, 쓰레기를 줍는 게 환경보호일까? 쓰레기를 버리는 게 환경파괴일까?라는 생각이다. 사실 쓰레기를 산에 버리든, 일반쓰레기 봉지에 버리든 장소만 다르지 똑같은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오염을 분산시켜 놔서 지구의 자정능력을 헤치지 않는 건 산에 버리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 제일 좋은 건, 쓰레기가 생기지 않게 소비를 줄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제발 산행을 할 때 평소보다 뭘 더 챙기거나 구입하지 말고 줄일 수 있는 건 줄여서 산행을 했으면 좋겠다. 

마등령은 말의 등을 닮았다고 해서 마등령이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마의구간의 '마(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옛날부터 했었다. 왜냐면 오르기(등) 어려우니까... 

하지만, 이번에 오른 마등령은 뭐 그냥 그랬다. 여름에 갔었던 화대종주가 너무 강렬했었는지, 이제 웬만한 산행은 어렵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교를 하자면 이번 공룡능선은 수락산의 2배 정도? 가 적당한 난이도라 생각한다. 악플은 사양하겠습니다...

킹콩바위란다...

한참을 운행하다 보니 사람들이 시끌벅적하다. 어느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것 같다. 킹콩 바위란다. 처음엔 무슨 킹콩이야 했는데, 정말 킹콩 바위였다. 어찌 킹콩이 여기까지 온 걸까. 킹콩 바위에 감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이 시각이 09:30분). 이제는 내리막 길이라 조금 힘들 것 같다. 

산행했던 날이 10월 3일이라 아직 설악은 완전히 단풍으로 물들진 안았지만, 군데군데 노랗고 빨간 잎이 '어느덧 가을이구나'를 느끼게 해 주었다. 시간이 참 빨라서 안타깝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 눈물 닦고 다시 산행을 이어나간다.

산행을 하면서 시간을 체크해 보니 예상보다 조금 빠른 것 같아, 조금 페이스를 늦췄다. 12시간 정도 생각했는데 10시간도 안돼서 내려올 것 같아, 조금 여유 있게 설악을 즐기면서 내려왔다. 물론 무릎도 시큰 거리기 시작했기에... 2차 눈물...

사진엔 잘 표현이 안된 것 같지만, 마등령을 찍고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코스는 참 가팔랐고. 내려올 때에는 뭐랄까. 무릎 좀 아낄걸, 스틱 좀 미리 쓸걸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하산의 단계이다 보니 맘은 가벼웠다. 

중간중간 국립공원 관리공단 측에서 달아놓은 식별띠?(정확한 명칭을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일반 산악회인지 뭔지 모를 분들이 걸어놓은 식별띠... 사실 이것도 불필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부 산악회가 걸어놓은 식별띠가 공해처럼 느껴진다. 기능보다 뭔가 자신들을 과시? 홍보?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맞습니다. 저 불편 충입니다...

귀여운 다람쥐

찡그렸던 미간을 펴준 귀여운 다람쥐. 사람들이 먹을걸 많이 줘서 그런지 아님 하두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설악의 다람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가깝게 귀요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잖아? 맞습니다. 전 선택적 불편충입니다.

어느덧 희운각이 3km도 안 남았다. 물론 가면 갈수록 무한대로 늘어나는 남은 거리의 마법을 보겠지만... 무튼, 이때 시간이 오전 10:00분이었다. 부지런히 걸었다. 

저 멀리 울산바위도 보이는 것 같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경치에 또 한 번 감탄한다. 정말 오길 잘했다. 일 년에 꼭 한 번은 오자는 약속, 내년에도 꼭 지켜야지. 내년엔 꼭 소중한 사람과 같이 오고 싶다. 3차 눈물....

이제 간식을 까먹었다. 쓰레기 줍기도 하면서... 구름이 잔뜩이다. 비가 오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느긋하게 운행했던 걸 다시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희운각 대피소에 왔다. 이때가 12:04분이었다. 많은 분들이 바리바리 쌓인 음식과 어른들의 음료(?)를 맛있게 드시고 계시더라. 부디 안전산행하세요. 제발요. 

이제 거의 다 내려온 듯하다. 등산복이 아닌 평상복과 구두를 신고 가볍게 산책하시는 분들이 보이니 말이다. 다행히 비도 안 왔고, 무릎도 멀쩡하다. 이게 다 부처님의 자비 때문인가.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조심스럽게 남이 쌓아 올린 돌탑을 찍어봤다. 잘 쌓으셨다. 나도 가볍게 합장을 하고 소원을 빌어본다. 

설악산 신흥사

이제 정말 신흥사다. 신흥사는 2013년이었나? 하계 산행이 생각이 나는 곳이다. 신입생들과 왔던 설악에서 비선대(비선대 산장이 있었던 시절)에서 하루 자면서 정비를 했던... 삼겹살을 구워 먹었나? 무튼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설악동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15:03분이다. 총 운행시간은 10시간 13분이 걸렸다. 무리하지도 또 너무 여유 부리지도 않았던 산행이었다. 적당한 체력과 적당한 준비(식량, 물, 옷 등)만 있으면 누구든 짧게는 8시간, 조금 오래 걸려도 14시간 내에 당일로 설악을 즐길 수 있는 멋진 코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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